경동맥 협착증, 혈관 절반 막혀도 무증상... "조기 검진이 뇌졸중 예방의 열쇠"
목 부위의 혈관인 '경동맥'은 뇌로 가는 혈액의 약 80%를 공급한다. 이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질환인 '경동맥 협착증'은 전체 뇌졸중 원인의 20~30%를 차지하지만, 혈관의 절반 이상이 좁아질 때까지 뚜렷한 증상이 없어 갑작스러운 뇌졸중에 직면할 수 있다.
서구화된 식습관과 고령화로 인해 국내 경동맥 협착증 환자는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환자 수는 지난 2020년 약 9만 9천 명에서 2023년에 약 14만 3천 명으로 4년 새 43%나 증가했다. 특히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기저질환이 있거나 흡연을 하는 중장년층이라면 혈관 내벽에 플라크가 쌓여있을 확률이 높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에 신경외과 김성태 교수(인제대학교 해운대백병원)와 함께 경동맥 협착증의 발생 기전부터 아찔한 전조증상인 일과성 허혈 발작, 그리고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한 치료의 골든타임까지 자세히 알아본다.
혈관 내 '플라크' 축적이 원인, 고혈압·당뇨 환자 특히 주의해야
경동맥 협착증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은 '죽상동맥경화증'이다. 혈관 내벽에 콜레스테롤 등 찌꺼기가 엉겨 붙어 혈관이 좁아지고 딱딱해지는 질환으로, 주로 혈류의 흐름이 복잡한 경동맥이 갈라지는 곳에서 잘 발생한다. 손상된 혈관 내피에 나쁜 콜레스테롤(LDL)이 침투해 염증이 생기면, 지질 및 염증 세포로 구성된 플라크가 형성된다. 이것이 파열되면 곧바로 뇌졸중으로 이어지게 된다.
흡연을 비롯해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대사증후군은 이를 촉진시키는 가장 위험한 요인이다. 김성태 교수는 "고혈압은 혈관 내피 손상을 촉진하고, 당뇨병은 염증과 산화스트레스를 높인다. 이러한 위험 인자들이 서로 겹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므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 조절과 금연까지 종합적인 관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경동맥 절반 이상 막혀도 대부분 무증상... 뇌졸중 바로 나타날 수도
문제는 이처럼 플라크가 쌓여 혈관이 심하게 좁아지는 동안에도, 환자 본인은 특별한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성태 교수는 "뇌로 가는 혈류는 한쪽 경동맥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반대편 경동맥과 척추동맥이 뇌 바닥의 혈관망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어느 정도 혈류 보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질환 자체가 서서히 진행되므로 몸이 그 상태에 적응해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증상이 없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좁아진 혈관 부위에 쌓인 '죽상경화반(플라크)'이 불안정해지면서 파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떨어져 나온 혈전(피떡)이나 미세 색전이 혈류를 타고 올라가 뇌혈관을 막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로 인해 일과성 허혈 발작이나 뇌경색이 발생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전조증상 없이 바로 뇌졸중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경고했다.
한쪽 눈 깜깜해지는 '흑암시', 뇌졸중 경고하는 '미니 뇌졸중' 주의보
그렇다면 본격적인 뇌졸중이 오기 전,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는 무엇일까. 주의해야 할 것은 흔히 '미니 뇌졸중'이라고 불리는 '일과성 허혈 발작'이다. 김성태 교수는 "일과성 허혈 발작은 일시적인 혈류 부족으로 뇌혈관이 막혔다가 뚫리면서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본격적인 뇌졸중이 오기 전의 강력한 경고 신호"라고 설명했다.
일과성 허혈 발작의 증상으로는 한쪽 얼굴이나 팔다리의 마비, 언어장애, 그리고 한쪽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가 회복되는 '흑암시'가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흑암시는 경동맥 협착증의 매우 특징적인 경고 증상이며, 몇 분 뒤 저절로 증상이 사라졌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증상이 잠깐이라도 있었다면 더 큰 뇌졸중의 예고일 수 있으므로 즉시 응급실이나 뇌졸중 전문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강도 운동 하다 증상 발현?... 숨어 있던 혈관 질환 자극
평소 무증상이던 환자가 무거운 중량을 드는 고강도 웨이트 트레이닝 중, 갑자기 마비나 어눌함을 겪고 경동맥 협착증 진단을 받는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해 김성태 교수는 "운동 자체가 직접 질환을 야기하는 원인은 아니며, 이미 협착이 있었거나 불안정한 플라크가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강한 힘을 주면 혈압 변동으로 혈류의 역학적 변화가 커져 숨어 있던 혈관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동맥 협착증을 넘어 혈관이 파열되는 위험성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고강도 운동이나 목에 무리가 가는 동작 후 신경학적 증상이 생겼다면, 혈관이 찢어지는 '경동맥 박리'나 '추골동맥 박리'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협착증과는 다른 질환이지만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구분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운동 중이나 직후 한쪽 팔다리 마비, 시야 이상, 심한 두통이나 목 통증이 나타난다면 즉시 운동을 멈추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수술vs시술 기준은?... 협착 수치보다 '증상 유무'가 핵심
경동맥 협착증은 약물치료부터 스텐트 삽입술, 내막 절제술 등 치료 방법이 다양하다. 다만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최우선 기준은 협착 수치, 즉 혈관이 막힌 퍼센트가 아니라 증상의 유무다. 김성태 교수는 "일과성 허혈 발작이나 뇌경색 병력이 있는 '증상성 협착'은 재발 위험이 매우 높아 내막 절제술이나 스텐트 시술 등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반면 '무증상 협착'은 항혈소판제, 스타틴 투여 및 혈압과 혈당 조절 같은 약물치료와 위험인자 관리가 기본이 되며 모두가 수술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수술 방식을 택할 때에도 협착 정도, 환자 나이, 증상 유무, 플라크 불안정성, 병변 위치, 반대쪽 경동맥 상태, 심장 질환이나 폐 질환 동반 여부, 전신마취 위험도를 모두 종합하여 고려한다. 김 교수는 "일반적으로 수술 위험이 낮고 병변 접근이 쉬우면 '경동맥 내막 절제술'이 우선되지만, 목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 병력이 있는 이들, 병변 위치가 수술에 불리한 경우, 전신 상태 탓에 전신마취 수술 부담이 큰 환자에게는 '경동맥 스텐트 시술'이 대안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급여 기준도 참고가 된다. 현재 증상이 있는 50% 이상 협착, 또는 무증상 70% 이상 협착 중 일부 고위험군에서 스텐트 시술 급여가 인정된다. 단, 이는 급여 기준일 뿐이며 반드시 시술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치료 방법의 경우 의료진과 상담이 필요하다.
치료 후에도 재발 위험 존재... 50대 이상 위험군, 정기 검진 필수
경동맥 협착증은 스텐트 시술이나 내막 절제술을 받았다고 해서 완치되는 질환이 아니다. 언제든 재협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태 교수는 "경동맥 협착증은 수술로 완치되는 병이 아니라, 전신 동맥경화를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라고 강조했다. 치료 후에도 경동맥 초음파 등 정기적인 추적 관찰과 철저한 약물 복용, 금연이 필수다.
50대 이상이면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이 있다면 경동맥 초음파 검진을 받아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뇌졸중 환자의 90% 이상이 50대 이상에 집중돼 있다. 경동맥 협착증이 이러한 뇌졸중을 유발하는 핵심 주범인 만큼, 중장년층의 혈관 건강 관리는 필수다. 김 교수는 "당장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50대 이상인 위험군은 정기적인 경동맥 초음파 검사를 받아, 혈관 내 플라크가 쌓이고 있는지 미리 확인해 예방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